123. 길가에서 답을 찾게 해준 ‘길마가지나무’
글.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마케팅팀장
며칠 전 봄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말에 수목원을 방문한 관광객이 꽃이 없다며 안내소로 불만을 토로했다. 담당직원은 이 계절에 볼 수 있는 봄꽃들의 위치를 상세히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분들은 여전히 꽃이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며 입장료 환불을 원했다. 이러한 상황을 처음 겪은 건 아니었지만, 담당 팀장으로 환불처리를 진행하며 마음이 편치 못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볼 수 있는 상황도 다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죄송한 마음과 아쉬움, 안타까움의 감정들이 교차하던 날, 수목원을 돌아보는데 ‘길마가지나무(Lonicera harae Makino)’가 진한 꽃내음으로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화려한 색상을 띠지도 않고 큰 꽃잎을 달고 있지도 않은, 1.5미터 남짓 아담하게 자란 나무는 봄 햇살을 가득 머금고 소박하게 꽃과 잎을 동시에 피우고 있었다. 흰색 같기도 하고 연한 홍색이 섞인 듯 오묘한 색을 띤 꽃은 두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활짝 벌리고 춤을 추는 것 같이 쌍을 지어 피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숱하게 수목원의 봄꽃들을 만났지만 길마가지나무의 꽃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있었던가! 이 꽃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꽃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나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깨우며, ‘너도 날 처음 보았으면서...’ 란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또 있을까?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에서 왜성침엽수원 맞은편의 작은 화단에 자라고 있는 길마가지나무는 2005년 4월 18일에 헝가리 Vacratot 식물원으로부터 받은 씨앗을 온실에서 싹을 틔워 키운 나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나무의 자생지는 우리나라이다. 한국의 나무가 헝가리까지 갔다가 그 씨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으니 감회가 새롭다. 이 나무는 중국의 동북부와 일본의 쓰시마섬에 일부가 분포하나, 주로 한반도 함남, 황해도 이남으로 남부지역의 얕은 산지에서 잘 자라는 토종식물이다. 인동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잎과 가지에 털이 나는데, 이 계절 꽃이 피고 지면 5~6월에 붉은 색으로 열매가 익는다. 열매의 모양이 독특한데, 보리수나무 열매처럼 생긴 두 개의 열매가 반 정도 붙어서 나와 마치 하트 모양처럼 생긴다. 제주도에서는 열매를 식용했다고 전해진다.
▲ 꽃이 피고 난뒤 하트모양으로 맺히게 될 열매를 떠올릴 수 있다.
길마가지나무란 이름은 예전에 소나 말의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해 얹는 안장을 ‘길마’라 불렀는데 그 모양이 말굽모양으로 구부러져 길마가지나무의 열매와 모양이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현대에 이르러 어떤 이는 산길 가장자리에 무성하게 뻗어난 가지가 길을 막는다고, 또 어떤 이는 고즈넉한 숲길에서 그윽한 향기를 풍겨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춰 길을 막는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길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은 후자의 해석이 더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아는 만큼 보이는 까닭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했던가. 길가에서, 수목원에서, 하물며 우리네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매일 오가는 출근길에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어느 날 문득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는 꽃을 발견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길마가지나무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보는 사람의 관심과 태도, 또 관점과 경험, 마음가짐 등에 따라서 같은 장소에서도 저마다 보고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어디 꽃뿐이랴. 무엇이든 관심과 애정을 두고 보아야 비로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거칠고 쓸쓸한 곳이, 누군가에게는 찬란한 봄꽃의 향연장이 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123. 길가에서 답을 찾게 해준 ‘길마가지나무’
글.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마케팅팀장
며칠 전 봄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말에 수목원을 방문한 관광객이 꽃이 없다며 안내소로 불만을 토로했다. 담당직원은 이 계절에 볼 수 있는 봄꽃들의 위치를 상세히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분들은 여전히 꽃이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며 입장료 환불을 원했다. 이러한 상황을 처음 겪은 건 아니었지만, 담당 팀장으로 환불처리를 진행하며 마음이 편치 못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볼 수 있는 상황도 다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죄송한 마음과 아쉬움, 안타까움의 감정들이 교차하던 날, 수목원을 돌아보는데 ‘길마가지나무(Lonicera harae Makino)’가 진한 꽃내음으로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화려한 색상을 띠지도 않고 큰 꽃잎을 달고 있지도 않은, 1.5미터 남짓 아담하게 자란 나무는 봄 햇살을 가득 머금고 소박하게 꽃과 잎을 동시에 피우고 있었다. 흰색 같기도 하고 연한 홍색이 섞인 듯 오묘한 색을 띤 꽃은 두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활짝 벌리고 춤을 추는 것 같이 쌍을 지어 피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숱하게 수목원의 봄꽃들을 만났지만 길마가지나무의 꽃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있었던가! 이 꽃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꽃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나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깨우며, ‘너도 날 처음 보았으면서...’ 란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또 있을까?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에서 왜성침엽수원 맞은편의 작은 화단에 자라고 있는 길마가지나무는 2005년 4월 18일에 헝가리 Vacratot 식물원으로부터 받은 씨앗을 온실에서 싹을 틔워 키운 나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나무의 자생지는 우리나라이다. 한국의 나무가 헝가리까지 갔다가 그 씨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으니 감회가 새롭다. 이 나무는 중국의 동북부와 일본의 쓰시마섬에 일부가 분포하나, 주로 한반도 함남, 황해도 이남으로 남부지역의 얕은 산지에서 잘 자라는 토종식물이다. 인동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잎과 가지에 털이 나는데, 이 계절 꽃이 피고 지면 5~6월에 붉은 색으로 열매가 익는다. 열매의 모양이 독특한데, 보리수나무 열매처럼 생긴 두 개의 열매가 반 정도 붙어서 나와 마치 하트 모양처럼 생긴다. 제주도에서는 열매를 식용했다고 전해진다.
▲ 꽃이 피고 난뒤 하트모양으로 맺히게 될 열매를 떠올릴 수 있다.
길마가지나무란 이름은 예전에 소나 말의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해 얹는 안장을 ‘길마’라 불렀는데 그 모양이 말굽모양으로 구부러져 길마가지나무의 열매와 모양이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현대에 이르러 어떤 이는 산길 가장자리에 무성하게 뻗어난 가지가 길을 막는다고, 또 어떤 이는 고즈넉한 숲길에서 그윽한 향기를 풍겨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춰 길을 막는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길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은 후자의 해석이 더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아는 만큼 보이는 까닭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했던가. 길가에서, 수목원에서, 하물며 우리네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매일 오가는 출근길에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어느 날 문득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는 꽃을 발견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길마가지나무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보는 사람의 관심과 태도, 또 관점과 경험, 마음가짐 등에 따라서 같은 장소에서도 저마다 보고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어디 꽃뿐이랴. 무엇이든 관심과 애정을 두고 보아야 비로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거칠고 쓸쓸한 곳이, 누군가에게는 찬란한 봄꽃의 향연장이 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