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영혼까지 미소짓게 하는 ‘촛대초령목’
글.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마케팅팀장
천리포수목원은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답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같은 장소지만, 해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때는 목련이 흐드러지는 봄이 되었다가,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나는 여름이 되었다가, 연못에 파란 하늘이 푸르게 물드는 가을이 되기도 한다. 요즘들어 내게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바로 계절과 계절 사이, 철이 바뀌는 환절기이다.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는 계절은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처연하게 사그라드는 꽃들 사이로, 쫑긋하게 머리를 세우며 조심스레 피어오르는 생명을 볼 수 있기에 오히려 꽃들이 만발한 계절보다 더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며칠 전 봄과 여름의 길목에서 ‘촛대초령목(Magnolia figo (Lour.) Spreng.)’을 만났다.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서해전망대를 오르던 내 콧 끝에 바닐라와 바나나와 비슷한 달달한 향기가 와 닿아 주변을 둘러보니 우수수 떨어진 꽃잎 위로 연노란색의 작은 꽃이 푸른 잎 사이로 수줍은 듯 피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만 보아도 꽤 오래전에 개화가 진행된 듯한데, 크지 않은 나무 중간 중간에 한참 피어있는 꽃,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도 제법 보였다. 더 가까이 꽃을 보고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서자 후두둑 작은 꽃잎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유한한 꽃의 마지막을 보며 새로운 꽃을 맞이하는 시간은 더 귀하고 더 곱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촛대초령목’은 ‘피고초령목’, ‘피고목련’ 이라고도 부르며, 영어권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바나나와 닮아 ‘바나나 목련(Banana Magnolia)’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하는 꽃이란 뜻으로 함소화(含笑花)라 부른다. 이 식물은 중국 남부가 원산으로 상록성 관목인 목련과의 나무다. 일반적으로 목련은 봄에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나무로 여기기 때문에 상록성이며 5~6월에 꽃이 피는 이 나무가 목련과라고 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다. 같은 식물을 두고 ‘초령목’과 ‘목련’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존의 목련과 식물을 분류할 때 가지 끝에 꽃이 달리면 목련(마그놀리아, Magnolia), 가지 중간에 꽃이 피면 초령목(미켈리아, Michelia)속으로 구분한데서 비롯된다. 현재는 목련과에 속하는 Magnolia, Michelia, Manglietia 속을 Magnolia로 혼합해 학명에 표기하고 있다.
촛대초령목은 ‘촛대’와 ‘초령목(招靈木)’이란 단어가 합쳐진 이름으로, ‘촛대’는 꽃이 지고 나서 열매를 맺는 과정에 촛대모양으로 씨방이 위로 올라온 모습에서 연유되었다, ‘초령목’은 한자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혼령을 부르는 나무란 뜻으로 꽃향기가 진해서 영혼, 귀신까지불러 온다고 믿어 붙여졌다. 꽃의 지름이 3cm도 채 안 되는 작은 몸집이지만 짙고 강한 향기가 나니 영혼까지 미소 지을 만하다 싶다. 향기로운 꽃을 쉽게 감상할 수 있고, 상록성인데다 초령목류 중에서도 3~6m로 낮게 자라는 편이라 화단 경계면이나 상록 울타리로 사용하기 좋다. 단, 추위에 강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온난한 남부지역에서 키울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에서 서해전망대를 오르기 위한 언덕 서편에 자리잡은 ‘촛대초령목’은 1978년 2월 25일 일본에서 묘목으로 가져온 나무다. 봉오리 상태에서는 노란 꽃잎 가장자리에 붉은빛이 도는 자색의 선이 가늘게 보이는데, 만개한 후 시들어가는 꽃을 살펴보면 안쪽 꽃잎 아래에서 은은하게 자주색이 올라와 신비하고 오묘하다.
최근 뉴스에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한다. 나 역시 오래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를 떠올려 보면 웃음이 없었다. 웃음을 잃으니 활력도 의욕도 없었다. 죽고 사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존재하기에 웃음 짓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자연의 이치이지만 그때는 그게 잘 보이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정원을 거닐어 본 사람은 안다. 그 어떤 식물도 함부로 자신을 떨구지 않는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까지 영혼마저 미소 짓게 만드는 촛대초령목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까지 아름다운 웃음으로 채워보면 어떨까.
125. 영혼까지 미소짓게 하는 ‘촛대초령목’
글.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마케팅팀장
천리포수목원은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답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같은 장소지만, 해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때는 목련이 흐드러지는 봄이 되었다가,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나는 여름이 되었다가, 연못에 파란 하늘이 푸르게 물드는 가을이 되기도 한다. 요즘들어 내게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바로 계절과 계절 사이, 철이 바뀌는 환절기이다.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는 계절은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처연하게 사그라드는 꽃들 사이로, 쫑긋하게 머리를 세우며 조심스레 피어오르는 생명을 볼 수 있기에 오히려 꽃들이 만발한 계절보다 더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며칠 전 봄과 여름의 길목에서 ‘촛대초령목(Magnolia figo (Lour.) Spreng.)’을 만났다.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서해전망대를 오르던 내 콧 끝에 바닐라와 바나나와 비슷한 달달한 향기가 와 닿아 주변을 둘러보니 우수수 떨어진 꽃잎 위로 연노란색의 작은 꽃이 푸른 잎 사이로 수줍은 듯 피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만 보아도 꽤 오래전에 개화가 진행된 듯한데, 크지 않은 나무 중간 중간에 한참 피어있는 꽃,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도 제법 보였다. 더 가까이 꽃을 보고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서자 후두둑 작은 꽃잎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유한한 꽃의 마지막을 보며 새로운 꽃을 맞이하는 시간은 더 귀하고 더 곱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촛대초령목’은 ‘피고초령목’, ‘피고목련’ 이라고도 부르며, 영어권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바나나와 닮아 ‘바나나 목련(Banana Magnolia)’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하는 꽃이란 뜻으로 함소화(含笑花)라 부른다. 이 식물은 중국 남부가 원산으로 상록성 관목인 목련과의 나무다. 일반적으로 목련은 봄에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나무로 여기기 때문에 상록성이며 5~6월에 꽃이 피는 이 나무가 목련과라고 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다. 같은 식물을 두고 ‘초령목’과 ‘목련’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존의 목련과 식물을 분류할 때 가지 끝에 꽃이 달리면 목련(마그놀리아, Magnolia), 가지 중간에 꽃이 피면 초령목(미켈리아, Michelia)속으로 구분한데서 비롯된다. 현재는 목련과에 속하는 Magnolia, Michelia, Manglietia 속을 Magnolia로 혼합해 학명에 표기하고 있다.
촛대초령목은 ‘촛대’와 ‘초령목(招靈木)’이란 단어가 합쳐진 이름으로, ‘촛대’는 꽃이 지고 나서 열매를 맺는 과정에 촛대모양으로 씨방이 위로 올라온 모습에서 연유되었다, ‘초령목’은 한자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혼령을 부르는 나무란 뜻으로 꽃향기가 진해서 영혼, 귀신까지불러 온다고 믿어 붙여졌다. 꽃의 지름이 3cm도 채 안 되는 작은 몸집이지만 짙고 강한 향기가 나니 영혼까지 미소 지을 만하다 싶다. 향기로운 꽃을 쉽게 감상할 수 있고, 상록성인데다 초령목류 중에서도 3~6m로 낮게 자라는 편이라 화단 경계면이나 상록 울타리로 사용하기 좋다. 단, 추위에 강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온난한 남부지역에서 키울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에서 서해전망대를 오르기 위한 언덕 서편에 자리잡은 ‘촛대초령목’은 1978년 2월 25일 일본에서 묘목으로 가져온 나무다. 봉오리 상태에서는 노란 꽃잎 가장자리에 붉은빛이 도는 자색의 선이 가늘게 보이는데, 만개한 후 시들어가는 꽃을 살펴보면 안쪽 꽃잎 아래에서 은은하게 자주색이 올라와 신비하고 오묘하다.
최근 뉴스에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한다. 나 역시 오래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를 떠올려 보면 웃음이 없었다. 웃음을 잃으니 활력도 의욕도 없었다. 죽고 사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존재하기에 웃음 짓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자연의 이치이지만 그때는 그게 잘 보이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정원을 거닐어 본 사람은 안다. 그 어떤 식물도 함부로 자신을 떨구지 않는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까지 영혼마저 미소 짓게 만드는 촛대초령목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까지 아름다운 웃음으로 채워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