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 초여름의 물결, 노루오줌

관리자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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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씨, 날이 조금씩 더워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녁 시간은 아직 시원하고, 걷다 보면 고라니 울음소리도 가끔 들립니다. 고라니, 고라니의 친구 사슴. 그리고 노루. 생각이 이어집니다.

 

생각하다 보니, ‘노루’가 들어간 생물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노루궁뎅이버섯, 노루귀, 노루발... 그리고 노루에 관한 이야기도 따라옵니다. “노루잠”은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주 깨는 것, “노루 뼈 우리듯 우리지 말라”는 한번 보거나 들은 지식을 되풀이할 때 핀잔을 주는 말이지요. 아무래도 노루는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보이는 동물이기에 이름에도,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하는 듯합니다. 그중 가장 재미난 이름은 바로 ‘노루오줌’이 아닐까요.

대부분의 식물 이름은 외형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입니다. 잎의 모양이 노루의 귀 같다고 해서 ‘노루귀’, 노루의 발 모양인 ‘노루발’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노루오줌은 왜 ‘노루오줌’이 되었을까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외형을 보고 이름 붙여진 식물들과 달리 숨겨진 냄새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냄새는 땅 밑의 뿌리에서 난다고 하는데, 막상 식물을 심고 만져보면 그저 흙 내음이 올라올 뿐입니다. 천적에게 먹히지 않기 위한 수단이라면 멧돼지에게는 아주 고약하게 느껴지려나요.

 

노루오줌의 뿌리는 악취를 가졌다지만, 눈에 보이는 모습은 어떨까요.

먼저 노루오줌 학명인 Astilbe chinensis를 확인해 봅시다. Astilbe의 a는 ‘~이 없다’, stilbe는 ‘빛나다, 반짝이다’의 뜻으로 반짝이는 것이 없다는 말로 풀면 조금 너무한 것도 같습니다. 영어로 부르는 이름은 ‘가짜 염소수염’(False goat’s beard)으로 꽃의 모습이 염소수염처럼 부풀어 거꾸로 꽂힌 것 같은 모습 때문이지요.

 

이름의 뜻으로만 보면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지만 미(美)의 기준이란 참으로 주관적이고 또 시대에 따라 변화합니다. 맨 처음 이름(학명) 붙일 때는 노루오줌의 반짝임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손자 해리 왕손 결혼식에서 부케로 사용된 노루오줌은 21세기에서 충분히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진 식물이 아닐까요. 

초여름, 아직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에 군락지어 피어나는 노루오줌의 꽃을 보고 있으면 흔들리는 파스텔톤의 물결 같습니다. 바다 가까이의 천리포수목원 안에 또 다른 바다가 있는 것 같죠. 00씨, 본격 더위가 시작되기 전 흔들리는 노루오줌 파도에 풍덩 빠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