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서로 마주보며 화합하는 ‘자귀나무’

글.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마케팅팀장
우연히 한 종편 방송에서 새롭게 선보인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말이 아닌 오직 서로의 눈빛을 통해 진심을 전하는 내용이었는데, 단지 몇 분 간만 눈 맞춤을 했을 뿐이지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시선을 마주치는 작은 일이었지만 서로의 오해와 갈등을 풀어주는 큰 역할을 했기에 훈훈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다. 불현듯 ‘자귀나무(Albizzia julibrissin Durazz)’가 떠올랐다. 매일 밤마다 작은 잎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기대어 화합하니 얼마나 돈독하고 아름다운가!


자귀나무는 하천변이나 햇볕이 잘 드는 산지나 정원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하는데, 잠자리 날개처럼 생긴 잎들이 서로 마주 보며 촘촘히 달려 있다. 일부 문헌에서는 자는 모습이 귀신같다고 또는 도끼와 비슷하게 생긴 연장인 ‘자귀’의 손잡이를 만들어 썼다 하여 지금의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콩과 식물로 분류되는 자귀나무는 낙엽지는 작은소교목으로 해가 지면 마주 보는 작은 잎들이 서로를 껴안듯이 붙었다가 해가 뜨면 다시 펴진다. 이를 두고 금슬 좋은 다정한 부부를 연상해 ‘합혼수(合婚樹)’, 합해져 기쁨을 나눈다 하여 ‘합환목(合歡木)’으로 불리기도 한다. 콩과 식물인 미모사, 무초 등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학술적으로 식물의 수면운동 또는 생물시계라 부른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에서는 ‘잠자는 나무’란 뜻으로 ‘네무노끼(ねむのき)’라 부른다. 자귀나무 입장에서는 밤에는 해가 없으니 광합성을 할 수 없고, 수분 증발이나 비바람 같은 자극으로부터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외부와 닿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내세운 대책이니 현명하고 신비한 전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밤에 이루어지는 예사롭지 않은 자귀나무의 거사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자귀나무는 잎 모양새와 개성 넘치는 꽃이 이국적으로 느껴지지만 황해도와 강원도 이남에서 자라는 토종나무이다. 일본, 이란, 남아시아 등 온대와 열대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데, 이맘때면 하늘을 향해 곱고 우아하게 펼쳐진 꽃을 피워 눈길을 끈다. 어릴 적 운동회에 단골로 등장하던 부채춤에 쓰인 부채를 떠올리게 하는 분홍빛 꽃은 더위를 날려 줄 것 마냥 하늘거린다. 자귀나무는 작은 꽃잎 밖으로 3~4cm 가량 길게 자란 수술의 선들이 모여 얼핏 보면 하나의 면처럼 느껴진다. 수술만 가득히 보이는 꽃은 공작이 날개를 편 것처럼 부챗살처럼 펼쳐져있다. 수술은 아래쪽이 흰색이고 위쪽이 분홍색인데, 물감을 물들인 것처럼 멋지다. 자세히 보면 수술과 암술이 함께 있는 양성화를 중심으로 수술만 있는 수꽃이 에워싸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자귀나무의 꽃 생김새를 보고 비단실을 떠올려 ‘실크 트리(Silk Tree)’라 부르기도 한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꽃은 향기도 그윽한데 개화도 꽤 오래 지속하는 편이다. 꽃이 지고 나면 납작하게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생겨나는데 겨울로 접어들면 연두색에서 갈색으로 익어간다. 겨울에 바람이 불면 가지에 매달린 콩 꼬투리가 서로 부딪혀 요란한 소리가 난다고 여성들의 수다에 빗대어 ‘여설수(女說樹)’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2001년 6월에 유원농장에서 가져온 묘목을 에코힐링센터 인근의 온실 맞은편 화단에 심어 제법 크게 자라고 있다. 자귀나무는 영하 21°C 까지 월동이 가능하고 토양을 가리지 않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 건조와 공해에도 강하다. 단 햇빛을 좋아하니 볕 잘 드는 곳에 심고 키우는 게 좋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자귀나무의 껍질은 ‘합환피(合歡皮)’라 하여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서 만사를 즐겁게 한다고 했다. 서로 마주 보며 만나고, 의지하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져 만사가 즐거운 것처럼, 지금 같은 시국에는 자귀나무처럼 마음을 하나로 합쳐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면 좋겠다.

126. 서로 마주보며 화합하는 ‘자귀나무’
글.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마케팅팀장
우연히 한 종편 방송에서 새롭게 선보인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말이 아닌 오직 서로의 눈빛을 통해 진심을 전하는 내용이었는데, 단지 몇 분 간만 눈 맞춤을 했을 뿐이지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시선을 마주치는 작은 일이었지만 서로의 오해와 갈등을 풀어주는 큰 역할을 했기에 훈훈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다. 불현듯 ‘자귀나무(Albizzia julibrissin Durazz)’가 떠올랐다. 매일 밤마다 작은 잎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기대어 화합하니 얼마나 돈독하고 아름다운가!
자귀나무는 하천변이나 햇볕이 잘 드는 산지나 정원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하는데, 잠자리 날개처럼 생긴 잎들이 서로 마주 보며 촘촘히 달려 있다. 일부 문헌에서는 자는 모습이 귀신같다고 또는 도끼와 비슷하게 생긴 연장인 ‘자귀’의 손잡이를 만들어 썼다 하여 지금의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콩과 식물로 분류되는 자귀나무는 낙엽지는 작은소교목으로 해가 지면 마주 보는 작은 잎들이 서로를 껴안듯이 붙었다가 해가 뜨면 다시 펴진다. 이를 두고 금슬 좋은 다정한 부부를 연상해 ‘합혼수(合婚樹)’, 합해져 기쁨을 나눈다 하여 ‘합환목(合歡木)’으로 불리기도 한다. 콩과 식물인 미모사, 무초 등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학술적으로 식물의 수면운동 또는 생물시계라 부른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에서는 ‘잠자는 나무’란 뜻으로 ‘네무노끼(ねむのき)’라 부른다. 자귀나무 입장에서는 밤에는 해가 없으니 광합성을 할 수 없고, 수분 증발이나 비바람 같은 자극으로부터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외부와 닿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내세운 대책이니 현명하고 신비한 전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밤에 이루어지는 예사롭지 않은 자귀나무의 거사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자귀나무는 잎 모양새와 개성 넘치는 꽃이 이국적으로 느껴지지만 황해도와 강원도 이남에서 자라는 토종나무이다. 일본, 이란, 남아시아 등 온대와 열대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데, 이맘때면 하늘을 향해 곱고 우아하게 펼쳐진 꽃을 피워 눈길을 끈다. 어릴 적 운동회에 단골로 등장하던 부채춤에 쓰인 부채를 떠올리게 하는 분홍빛 꽃은 더위를 날려 줄 것 마냥 하늘거린다. 자귀나무는 작은 꽃잎 밖으로 3~4cm 가량 길게 자란 수술의 선들이 모여 얼핏 보면 하나의 면처럼 느껴진다. 수술만 가득히 보이는 꽃은 공작이 날개를 편 것처럼 부챗살처럼 펼쳐져있다. 수술은 아래쪽이 흰색이고 위쪽이 분홍색인데, 물감을 물들인 것처럼 멋지다. 자세히 보면 수술과 암술이 함께 있는 양성화를 중심으로 수술만 있는 수꽃이 에워싸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자귀나무의 꽃 생김새를 보고 비단실을 떠올려 ‘실크 트리(Silk Tree)’라 부르기도 한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꽃은 향기도 그윽한데 개화도 꽤 오래 지속하는 편이다. 꽃이 지고 나면 납작하게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생겨나는데 겨울로 접어들면 연두색에서 갈색으로 익어간다. 겨울에 바람이 불면 가지에 매달린 콩 꼬투리가 서로 부딪혀 요란한 소리가 난다고 여성들의 수다에 빗대어 ‘여설수(女說樹)’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2001년 6월에 유원농장에서 가져온 묘목을 에코힐링센터 인근의 온실 맞은편 화단에 심어 제법 크게 자라고 있다. 자귀나무는 영하 21°C 까지 월동이 가능하고 토양을 가리지 않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 건조와 공해에도 강하다. 단 햇빛을 좋아하니 볕 잘 드는 곳에 심고 키우는 게 좋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자귀나무의 껍질은 ‘합환피(合歡皮)’라 하여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서 만사를 즐겁게 한다고 했다. 서로 마주 보며 만나고, 의지하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져 만사가 즐거운 것처럼, 지금 같은 시국에는 자귀나무처럼 마음을 하나로 합쳐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