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시선을 사로잡는 ‘육박나무’
글.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마케팅팀장
미세먼지도 봄을 막지는 못하나 보다. 언 땅을 헤집고 꼬물거리던 생명이 새잎을 내고, 소담스럽게 고운 꽃을 피운다. 복수초, 설강화, 크로커스, 납매, 풍년화, 매실나무, 영춘화까지 가세했으니 꽃물결이 미세먼지도 씻어줄 것 만 같다. 봄꽃에 홀려 정원을 둘러보다 육박나무(Actinodaphne lancifolia (Siebold & Zucc.) Meisn) 앞에서 번뜩 정신이 차려졌다. 이 계절 화려한 꽃 대신에 이 나무가 시선을 끄는 이유는 수피라고 부르는 나무껍질의 독특한 모습 때문이다.
육박나무란 이름은 여섯 육(六)에 얼룩말 박(駁)을 붙여 육각으로 얼룩하게 벗겨지는 특징에서 연유했는데, 밀리터리룩, 혹은 군복 무늬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마치 군복을 입은 듯한 얼룩얼룩한 모양과 베이지색, 흑갈색, 회색, 진녹색 등이 섞인 줄기는 세련되면서도 시크한 매력을 풍긴다. 사람들이 독특한 수피를 보면서 군복을 연상한 까닭에 ‘해병대나무’, ‘국방부나무’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해병대가 귀신을 잡을 만큼 용맹하다고 하는데, 육박나무는 우리네 시선을 잡는 나무가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비슷하게 껍질이 벗겨지지만, 버짐(일종의 피부병. 버즘은 버짐의 옛말)을 닮았다고 이름 지어진 ‘버즘나무’ 입장에서는 육박나무가 부러울 것 같다.

몇 주전 지인분이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왜 사자의 털 색깔이 누런색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초원에서는 짧은 우기에만 잠시 초록빛 이었다 금세 색이 바뀌어 장기간 마른 풀밭으로 누렇게 변하기 때문에 동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과 비슷한 색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하물며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사자도 생존을 위해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색을 띠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군복도 같은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전쟁에서 작전에 성공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은폐와 위장이 용이한 색과 무늬가 적용된 것인데, 과연 육박나무는 어떤 이유로 저러한 무늬와 색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얼룩얼룩한 무늬와 다양한 색이 시선을 더 끌 것만 같은데 혹시, 자신의 강인함을 표현해 상대를 제압하는 건 아닐까!
▲ 3월에도 싱그러운 육박나무 잎
녹나무과의 육박나무속은 아시아에 약 140종이 분포하는 상록성 식물로 비늘 모양으로 벗겨지는 수피가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육박나무는 일본 혼슈 이남, 타이완, 한국에 자라는 나무로 상록성 교목으로 높이 15~20m로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 도서 및 제주의 산지에서 자생하는데 8월에서 10월 사이에 꽃이 피고 이듬해에 열매가 맺힌다.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에 있는 주도 상림수림은 육박나무를 포함한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 제 28호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 내 다정큼나무집 근처에 자라고 있는 육박나무는 1975년 5월 24일에 제주 임업시험장에서 묘목으로 가져와 키운 나무다. 작았던 나무는 44년 동안 키를 훌쩍 높여 늠름하면서도 의젓하게 자라나 천리포수목원을 지키는 수호목이 되었다. 따뜻한 제주도가 고향인 어린 나무는 긴 세월 동안 전쟁 같은 모진 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아 그 어떤 군인 못지않게 스스로를 강인하게 다듬으며 치열하게 생명을 지켜냈을 것이다. 이 나무가 내뿜는 포스가 특별한 이유는 내면의 강인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부 해안가 정원수로 손색이 없는 육박나무는 장식재나 기구재, 악기를 만들 때도 이용되고 최근에는 항암 활성을 갖는 물질이 발견되어 각종 암 질환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약품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봄이 육박했다. 미세먼지가 기승이라 하늘이 뿌옇지만 육박나무가 지키는 천리포수목원에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봄의 생명이 맑고 푸르게 커가고 있다.
122. 시선을 사로잡는 ‘육박나무’
글.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마케팅팀장
미세먼지도 봄을 막지는 못하나 보다. 언 땅을 헤집고 꼬물거리던 생명이 새잎을 내고, 소담스럽게 고운 꽃을 피운다. 복수초, 설강화, 크로커스, 납매, 풍년화, 매실나무, 영춘화까지 가세했으니 꽃물결이 미세먼지도 씻어줄 것 만 같다. 봄꽃에 홀려 정원을 둘러보다 육박나무(Actinodaphne lancifolia (Siebold & Zucc.) Meisn) 앞에서 번뜩 정신이 차려졌다. 이 계절 화려한 꽃 대신에 이 나무가 시선을 끄는 이유는 수피라고 부르는 나무껍질의 독특한 모습 때문이다.
육박나무란 이름은 여섯 육(六)에 얼룩말 박(駁)을 붙여 육각으로 얼룩하게 벗겨지는 특징에서 연유했는데, 밀리터리룩, 혹은 군복 무늬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마치 군복을 입은 듯한 얼룩얼룩한 모양과 베이지색, 흑갈색, 회색, 진녹색 등이 섞인 줄기는 세련되면서도 시크한 매력을 풍긴다. 사람들이 독특한 수피를 보면서 군복을 연상한 까닭에 ‘해병대나무’, ‘국방부나무’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해병대가 귀신을 잡을 만큼 용맹하다고 하는데, 육박나무는 우리네 시선을 잡는 나무가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비슷하게 껍질이 벗겨지지만, 버짐(일종의 피부병. 버즘은 버짐의 옛말)을 닮았다고 이름 지어진 ‘버즘나무’ 입장에서는 육박나무가 부러울 것 같다.
몇 주전 지인분이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왜 사자의 털 색깔이 누런색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초원에서는 짧은 우기에만 잠시 초록빛 이었다 금세 색이 바뀌어 장기간 마른 풀밭으로 누렇게 변하기 때문에 동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과 비슷한 색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하물며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사자도 생존을 위해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색을 띠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군복도 같은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전쟁에서 작전에 성공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은폐와 위장이 용이한 색과 무늬가 적용된 것인데, 과연 육박나무는 어떤 이유로 저러한 무늬와 색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얼룩얼룩한 무늬와 다양한 색이 시선을 더 끌 것만 같은데 혹시, 자신의 강인함을 표현해 상대를 제압하는 건 아닐까!
▲ 3월에도 싱그러운 육박나무 잎
녹나무과의 육박나무속은 아시아에 약 140종이 분포하는 상록성 식물로 비늘 모양으로 벗겨지는 수피가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육박나무는 일본 혼슈 이남, 타이완, 한국에 자라는 나무로 상록성 교목으로 높이 15~20m로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 도서 및 제주의 산지에서 자생하는데 8월에서 10월 사이에 꽃이 피고 이듬해에 열매가 맺힌다.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에 있는 주도 상림수림은 육박나무를 포함한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 제 28호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 내 다정큼나무집 근처에 자라고 있는 육박나무는 1975년 5월 24일에 제주 임업시험장에서 묘목으로 가져와 키운 나무다. 작았던 나무는 44년 동안 키를 훌쩍 높여 늠름하면서도 의젓하게 자라나 천리포수목원을 지키는 수호목이 되었다. 따뜻한 제주도가 고향인 어린 나무는 긴 세월 동안 전쟁 같은 모진 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아 그 어떤 군인 못지않게 스스로를 강인하게 다듬으며 치열하게 생명을 지켜냈을 것이다. 이 나무가 내뿜는 포스가 특별한 이유는 내면의 강인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부 해안가 정원수로 손색이 없는 육박나무는 장식재나 기구재, 악기를 만들 때도 이용되고 최근에는 항암 활성을 갖는 물질이 발견되어 각종 암 질환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약품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봄이 육박했다. 미세먼지가 기승이라 하늘이 뿌옇지만 육박나무가 지키는 천리포수목원에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봄의 생명이 맑고 푸르게 커가고 있다.